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문단 편집) == 작품에 숨겨진 비밀 ==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다빈치 코드]]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아서 그렇지 미켈란젤로 역시 찾아보면 그림에 [[이스터 에그]]같이 숨겨둔 요소가 굉장히 많다. 하지만 이 중 몇몇 개는, 50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다보니 확실히 그가 숨겨둔 건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다. 당장 시스티나 천장화만 하더라도 수많은 [[이스터 에그]] 추정 요소들이 많다. [[아담]]의 탄생으로 유명한 구획은 잘 보면 뇌의 단면도로 추정되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어깨 관절의 모습이 숨겨진 무녀의 다리, 폐와 기관지의 모습이 숨겨진 [[하와]], 콩팥의 단면도를 나타낸 형상과 뇌의 생김새를 묘사한 목 부분 등등 찾아보면 수도 없다.[* <미켈란젤로 미술의 비밀>이란 책에서 이걸 매우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림 화질도 뛰어나고, 소소하고 재미난 이야기도 간간히 들어있다.] 물론 미켈란젤로가 '이건 이거다'라고 하고 가진 않았으니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이런 식의 인체 해부도와 유사성을 가진 구도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는 점, 그가 근육 묘사에 광기에 가까울 정도의 집착을 보여주었으며 해부를 직접 해 보지 않았으면 모를 정도로 인체에 통달해 있었다는 점 때문에 상당히 유력한 추측이다. 습작으로 그린 그림 중에는 피부를 없애고 근육을 직접 그려낸 그림도 있었다. 당시 허가받은 사람 외에 해부를 하는 것은 중죄였지만 미켈란젤로가 해부를 어떤 경로로든 했다는 것은 이제 미술학계에서도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당시 사회가 해부학을 금기하기는 했지만, 미켈란젤로나 다빈치 같은 경우는 허락받으면 연구용으로 정식 기증을 받아 해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더 빠르고 편하게 어둠의 경로로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중죄처벌을 받는 경우도 빈번했다. 여담이지만, 다빈치도 이 시체 해부 때문에 재판에 회부된 적이 있다. 어떤 젊은 남자의 시체를 해부했는데, 알고 보니 유력한 귀족 자제의 시체였던 것. 당연히 그 집안은 발칵 뒤집혀서 난리가 났고, 다빈치에게도 이 불똥이 튄다. [[최후의 심판]]에서는 이런 [[이스터 에그]]가 조금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림을 잘 보면 전체적으로 해골(다스 베이더)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바르톨로메오]]가 들고 있는 살가죽에는 미켈란젤로 본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작업이 진행되던 도중 [[교황청]] 의전관이었던 바지오 체세나 [[추기경]]이 [[예수]]를 비롯한 모든 유명한 성인들께서 나체로 벌거벗고 있다는 이유로 그림이 불경하다며 이 그림이 가장 어울릴 만한 장소는 '''창녀촌'''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 마디 하자, 미켈란젤로는 그를 그림 구석에 지옥의 왕 미노스로 묘사해 그려 넣어 복수했다. 이 악마 그림을 발견한 추기경은 교황 [[바오로 3세]] 앞에 엎드려 울면서 자길 지워달라고 애원했지만 바오로 3세는 '''"미안하네, 연옥에 있다면 내 어떻게 해보겠네만, 지옥에 있는데 내가 자넬 어떻게 구해주겠나"'''라면서 미켈란젤로의 승리를 선언했다. 사실 최후의 심판을 그리고자 한 취지 자체가 [[사코 디 로마]] 사건에서 입은 상처를 기억하고자 하는 감정적인 입장에서 기획된 것이니,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는 것도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시킨[*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분명 어느 정도 기쁜 마음으로 이 일에 임했다. 원래 벽에 있던 예술가의 프레스코 벽화를 구식이라고 늘 욕해왔던 그이기에, 이걸 대치하고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건 큰 기쁨을 주었을 것이다.] [[바오로 3세]]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바오로 3세]]는 해당 항목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듯이, 누나가 [[알렉산데르 6세]]의 애첩이어서 그 빽으로 추기경이 된 사람이었고 교황이 된 후에는 가톨릭의 보수반동화에 앞장선 사람이었다.] 때문에 교황이 [[미사]]를 집전할 때 신자들의 시야로는 그의 머리가 그림의 지옥의 입구에 걸리도록 해 놨다. 추기경보다도 예술가를 선택한 교황이었지만, 당시로서는 정말 황송한 처사를 내려주었음에도, 애초에 마음에 안 든다고 미켈란젤로는 그런 교황에게도 좋은 대접을 해주진 않았던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